뭐랄까, 태양 같았다.
이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태양을 본 게 언제였더라.
끝없는 어둠으로 뒤덮인 이계異界 보이드에서 다시 이 단어를 떠올릴 줄이야. 그녀는 속으로 조소를 흘렸다.
찬란한 빛의 덩어리라니. 세계가 멸망하며 눈부시게 빛나던 그 하늘도 함께 죽어버린 자신의 고향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단어였다.
그런데 빛이 사라진 세계에서 빛을 기억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걸까.
일만 년 하고도 그 이상. 정말 끔찍할 정도로 오래전의 일이었지만 난연했던 그것은 저 하늘만큼이나 어둡고 공허한 자신의 기억 속 어딘가에 어렴풋이 빛나며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제게 질문하는 인간들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자신이 여자를 본 순간부터 머릿속을 휘젓던 짧고도 익숙한 한 글자를 생각했다.
벗, 벗, 벗. 아, 그 역겨운 남자가 이 여자를 그렇게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녀의 눈에 ‘빛나는 건’ 오로지 이 여자뿐이었다. 벗이라는 건, 이런 ‘빛나는’ 인간을 칭하는 단어인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여기까지 말한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넌 '벗'이지? 제노스가 그렇게 부르는 걸 들었다.”
부정하는 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면 벗이라는 건 대체 뭐지? 그 남자의 사념이 너무 강하게 남은 탓인지 자꾸만 혼란스러워지는 머릿속이 거슬렸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여자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살짝만 건드려도 부서져 버릴 듯 연약해 보이는 겉모습.
자신의 가슴께 정도 오는 육체에서는 이질감이 들 정도로 특이하고 농도 짙은 에테르가 느껴졌다.
섬세하게 깎아 낸 듯한 뿔과 얼굴 선을 따라 얇게 돋아난 비늘. 붉은색 달콤한 과육의 속살 같은 입술, 그 위의 작고 오똑한 코. 가닥가닥 길게 뻗은 속눈썹과 세밀한 붓선 같은 그림자. 그 아래 태양의 색을 띤 눈동자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요마는 갑자기 식욕이 돌았다.
인육 섭취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요마들이 이따금씩 자행하곤 하는, 개인적으로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식사’ 방법 중 하나였다.
시선을 내리자, 여자의 하얀 목덜미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뭐랄까, 아주…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였다.
순간 살에 이를 박아 넣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꼭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생각했다.
지금 이 여자를 공격하면. 뒤쪽의 다른 인간들을 따돌린 후에, 다른 곳으로, 자신의 영역으로 데려간다면?
그러나 본능은 계속해서 경고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 여자는 상위 포식자였다.
다른 인간들이 여기 있든 없든, 여자를 공격하면 확실하게 죽는다.
어쨌든 한번 패했던 상대에게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녀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여전히 올라오는 욕구는 그저 지금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단어에 대한 의문으로 누르며.
그녀는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